EP 117

강북의 IT가 바뀐다: AI 시대의 ERP와 지식 노동 (코스맥스 고종옥 부문장)

· 노정석, 고종옥 · 1:17:31
페이지 전체

코스맥스 PI 혁신 부문장과 함께하는 AI 네이티브 ERP 0:00

0:00 노정석 녹화를 하고 있는 오늘은 2026년 10월 3일 토요일 아침입니다. 오늘은 제가 판교의 코스맥스에 나와 있습니다. 제가 비팩토리를 맡고 있기도 하지만 코스맥스의 디지털 고문 타이틀도 겸하고 있어서 코스맥스가 AI로 바뀌는 엔터프라이즈 AI 트랜스포메이션 업무도 같이 수행하고 있는데요. 오늘 저와 같이 일하고 있는 코스맥스 PI 혁신 부문의 고종옥 부문장님을 모셨습니다.

0:30 고종옥 안녕하세요. 코스맥스 PI 혁신 부문장 고종옥이라고 합니다. 오늘 AI 네이티브 ERP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유료 사용자 2~3%, AI 도입의 극초창기 0:40

0:40 노정석 저희가 참 많은 산을 넘어왔는데 AI가 지금 너무 빨라요. 너무 빠르니까 속도를 조절해야 된다, 이제 그만해야 된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건 말도 안 되는 얘기인 것 같고요. 저희 주변에서는 AI를 다 써서 Codex, Claude Code를 전부 쓰고 있는 것 같지만, 전체적인 도입 주기를 보면 미국도 전체 인구의 2~3% 정도가 유료 결제 모델을 쓰고, 전 세계 지식 노동자의 숫자가 약 15억 명 정도 된다고 해요. 이건 제가 a16z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얻은 통계인데, 코더의 숫자가 한 3천만 명 정도가 되거든요. 그 3천만 명 정도 되는 코더들이 대부분 지금 Codex, Claude Code로 대변되는 agent 트래픽을 차지해요. 거의 대부분이 코딩이거든요.

1:35 코딩을 뺀 나머지 부분에는 문서 요약이라든지 굉장히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 아직 기업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도 여기에 대해서는 한참 뒤에 있기 때문에 정말 극초창기라고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요새 많은 분들이 역사에 빗대어 이야기하는데, 지금 회사에서는 사람들한테 이런 얘기를 많이 하죠. 사람들한테 200달러짜리 요금제, 무제한 API 요금제 같은 것들을 다 줘서 뭔가 바뀐 것 같은데 회사의 생산성은 안 올라간다. 분명 더 편해진 사람들은 있을 거예요. 하던 업무를 빨리 끝내고 퇴근하는 거죠. 월급은 똑같이 나오는데 일은 줄어드는 경우들이 분명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을 최종적으로 보고 있는 기업의 최고경영자 입장에서는 회사 전체의 생산성이 오르지 않는 문제에 다들 의문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비유를 해요. 이게 증기기관에서 전기 모터로 가던 때와 비슷하다는 거죠. 증기기관이 들어와서 인간이 가내 수공업으로 하던 일을 공장으로 집중하고 효율화해서 만들었잖아요. 초창기에는 큰 증기기관 엔진이 돌아가고, 파이프로 연결해서 메인 축이 돌면 그 축에 수많은 벨트를 연결해 아래층과 위층으로 공장의 동력을 나눠 쓰는 구조였거든요. 그런데 처음 전기 모터가 들어왔을 때는 이런 구조는 그대로 두고 증기기관만 큰 전기 모터로 바꿨거든요. 이제 전기가 들어와서 더 빨리 돌리니까 일이 더 빨리 되느냐는 게 당시 공장주들의 질문이었다면, 그렇지 않더라고요.

3:30 그럼 진짜 공장의 생산성 증가는 언제 이루어졌나? 전기 모터가 조그마해지고, 작아진 전기 모터가 공장의 다양한 기계에 각각의 목적에 맞게 들어가서 공장 구조를 완전히 새롭게 짜기 시작했을 때부터 생산성이 증가했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거의 100년 동안 만들어 온 지식 노동 시스템을 쓰고 있는데, 이 workflow 전체가 통째로 변하지 않으면 변화는 오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판교의 IT가 모르는 강북의 IT 4:05

4:05 노정석 반추해 보면, 아마 이 팟캐스트를 들으시는 분들은 IT 쪽 배경이라든지 소프트웨어 쪽 배경을 가지신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저도 다녔던 회사들이 전부 소프트웨어 기반의 IT 회사이자 기술 회사들이고, 운영했던 회사들도 전부 소프트웨어 회사니까 소프트웨어 회사 입장에서는 필요한 workflow는 백본부터 만들어 쓰는 게 익숙하고, 회사에 들어가면 회사마다 자체적인 workflow들이 다 짜여 있고, 서비스 자체가 회사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짜여 있잖아요. 그런데 누가 이건 판교의 IT고, 판교 사람들이 모르는 강북의 IT가 존재한다고 얘기하더라고요.

4:56 강북의 IT라고 하면 우리가 많이 들어봤던 IBM이나 Oracle, 그런 대형 SI 회사들이 들어가서 하는 영역들을 말하는데, 이 강북의 IT에서 많이 들리는 이름이 SAP, Salesforce, Oracle, Microsoft 같은 이름들이죠. 코스맥스 얘기로 조금 돌아와 보면 여기도 강북의 IT가 완전히 들어와 있는 회사이고, 우리가 알 만한 굉장히 많은 솔루션이 다 들어가 있잖아요. 이야기는 작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2025년 가을 정도로 거슬러 올라가나요? 제가 코스맥스에서는 원래 AI라든지 신사업이라든지 이런 부분들에 주로 관여하고 있었는데, ERP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필요가 있었거든요. 그것 때문에 고생하다 고생하다가 고 부문장님이 오셔서 저희가 굉장히 많은 발전을 했고, 그사이 이야기들을 다 알고 계시니까 그 이야기로 한번 출발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코스맥스의 ERP 업그레이드 필요와 프로젝트 출발 5:20

6:20 노정석 SAP이라고 하면 ERP잖아요? ERP의 목적 자체가 기업 workflow 전체의 백본이 돼서 모든 부서의 자원들을 다 그 시스템 위에 올리고, 그것들을 통해서 업무가 진행되도록 한다는 그런 시스템이잖아요. 그리고 대부분의 회사가 다 ERP를 쓰고 있잖아요.

6:42 고종옥 어떤 방식으로라도 다 쓰고 있죠.

6:45 노정석 그런데 SAP이 보통 소프트웨어를 라이선스 방식으로 팔아요. 그래서 저희가 Office 2023을 구입하듯이 한번 구입하면 그 라이선스를 평생 갖는 거고, 유지보수 계약 같은 것들을 하면서 쭉 굴러가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요. SAP이 지금 이걸 클라우드로 전환하는 작업을 하고 있잖아요. 기존 라이선스 구조를 이제 PCE라고 하는 프라이빗 클라우드로 바꿔서 클라우드로 가고,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도 따라가는 거죠. 우리는 Google Cloud나 AWS 같은 것들에서 매우 익숙한 구조인데, 그렇게 하자고 해서 계속 구조를 바꾸고 있었던 중이에요. 사실 출발이 이거였어요. 클라우드 요금으로 바꾸고 이걸 전환해야 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히 크단 말이에요. 거의 몇백억대의 자원이 들어가는 초대형 프로젝트들이고, 보통 기업들이 이걸 차세대 ERP 프로젝트라고 하면서 거의 10년에 한 번씩 이 일들을 해왔던 거죠.

수백억 원이 걸린 차세대 ERP 프로젝트 7:31

8:00 노정석 그런데 클라우드로 넘어가는 것도 복잡하고, 또 그거에 딱 맞춰 AI 시대로 진입하고 있어서 굉장히 복잡한데, 그때 코스맥스의 최고경영진께서 저한테 하나의 미션을 주셨거든요. 되게 난감했는데, SAP 프로젝트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해야 옳은 것인지를 조사해 보고, 우리가 AI 시대에 가야 할 옳은 방향을 제시해 달라는 말씀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enterprise guy가 전혀 아니기 때문에 작년 가을에 SAP 관련 유튜브를 엄청 많이 봤어요. 일단 머리에 든 게 있어야 판단이 될 테니까 10시간짜리 수업도 듣고 이런저런 수업들을 다 듣고, 컴포넌트와 프로그램, ABAP 수업도 들어보고 했는데, 이건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건데, 10시간을 봐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여기는 자기들만의 ecosystem이 있고, 우리가 쓰지 않던 언어로 자신들만의 생태계가 굉장히 거대하게 잡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9:15 이게 잘못됐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엔터프라이즈 생태계가 있어 왔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사업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게 정말 우리 회사에 필요한 시스템인가, 우리 회사가 원하는 일들이 그만큼 있는데 그걸 제대로 지원하고 있는가라는 것들이 중요한 거잖아요. 그리고 그게 되기만 하면 나머지는 들어가는 돈 대비 결과물이 얼마나 좋냐는 걸 따져보면 되는 거니까요. 그런데 현실을 좀 보다 보니까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제 이해에 괴리가 있다면 부문장님이 좀 고쳐 주세요. ERP, 즉 Enterprise Resource Planning이 회사 업무를 돌리는 백본으로 동작하는 게 아니라, 회사는 결국 돈을 벌기 위한 조직이니까 맨 밑바닥에는 재무, HR, 총무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돈을 계산해서 결국 우리가 돈을 벌고 있냐, 아니면 까먹고 있냐를 계산해야 되니까 재무가 가장 밑에 있는 백본이 되는 경우가 많고, 결국 원가 계산을 하고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기 위한 재무 workflow에 나머지 현업들이 다 맞춰져 있는 시스템이라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10:37 고종옥 맞습니다. 기본적으로 ERP 시스템 자체가 FI를 지원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데이터를 만들어 주고, 장부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일하고 있는데, 거기서 더 나아가 업무 프로세스까지 다 녹이다 보니까 ERP가 너무 방대해지는 문제가 있는 거죠.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보통 ERP 프로젝트를 10년 주기로 하다 보니까 회사 내에서 바뀐 수많은 업무 프로세스가 빠르게 반영되지 못하고, 10년에 한 번 전체를 정비할 때 과거 10년 치의 프로세스를 다 같이 정비해야 되는 거예요.

10년 주기 재건축과 SI 컨설팅 관행 11:00

11:22 고종옥 그러다 보니까 비단 라이선스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ERP를 재건축하는 데 SI 컨설팅과 개발 비용이 막대하게 들어가는 구조가 이 업계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게 되게 놀라웠습니다. 소프트웨어 해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B2C 소프트웨어는 지금 고객한테 10달러 과금하기도 어렵고, 기업형 소프트웨어 하시는 분들도 몇만 달러짜리 매출 내기가 되게 어려운데, 여기는 몇백억짜리 프로젝트가 상시 돌아가는 구조입니다.

12:03 그래서 그동안 소프트웨어 하면서 뭐 하고 살았나, 여기에 어떻게 생각하면 꿀단지가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12:10 노정석 그런데 SAP이 굉장히 강력한 소프트웨어이긴 해요. B2B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을 하는 사람이고 본인이 A급 엔지니어라고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잖아요. B2C로 훌륭한 앱을 만든다든지, 아니면 소비자 서비스를 만든다든지, 또 B2B 애플리케이션들을 저희가 소위 SaaS라고 하죠. 이런 것들을 만들어서 다양한 고객들한테 팔 수 있고, 자체 사업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AI 시대가 시작되기 전 지난 10년은 거의 B2B SaaS의 시대였긴 해요. 조그만 프로세스들이라도 다 SaaS로 만들어서 엔터프라이즈 고객들한테 팔면서 정기 결제가 쌓이고 고객 이탈률을 관리하면서 어느 정도가 되면 이 회사 가치는 얼마라는 공식이 지난 10년간 지배했었는데, 지금은 거기에도 다들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죠.

13:12 고종옥 요새는 회사에서 Slack도 만들어서 쓰고, Notion도 만들어서 쓰고 있거든요. 이제 어지간한 SaaS는 다 자체적으로 만들어 쓰는 분위기가 돼 가고 있습니다.

아기 몸통에 성인 손발을 붙인 10년 된 backbone 13:24

13:27 노정석 저희가 지금 SAP의 무용론을 얘기하는 건 아니고, 엄밀히 얘기하면 코스맥스도 차세대 SAP으로 넘어가기 위한 프로젝트를 지금 하고 있는 거잖아요. 준비하고 있고, 공식적으로 프로젝트도 열릴 거고요. 그런데 그 전에 저희 회사 입장에서 이 시스템들을 한번 재정비해야 되겠다는 생각 때문에 AI를 투입해서 굉장히 많은 업무를 하고 있는데요. 다시 SAP 이야기로 돌아가서 여기서부터 출발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13:56 기존 시스템들은 어떤 모양이었고 그게 왜 문제가 되고 있는지 얘기를 좀 해볼 텐데요. 첫 번째로, 이 시스템이 SAP이라는 거죠. 저희는 2016년에 구입한 시스템이고, 2016년 당시의 workflow에 맞춰 ERP 시스템을 만들고 모듈들이 만들어져서 고객의 주문이 들어오고, 그 주문이 연구소에 넘어가서 샘플들이 만들어지고, 그러고 나서 PO가 확정되면 그걸 가지고 발주가 나가고, 그러면 부자재라든지 원료라든지 이런 것들과 연결돼서 소위 BOM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런 게 생기고, 이게 생산으로 넘어가면 생산 프로세스에 맞춰 돌아야 되고, 그러고 나서 고객한테 넘어가면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돈을 주고받죠. 여기서 문제가 생기면 이것들을 전부 추적하고 역추적하는 프로세스 자체가 10년간 변한 건 아닌데, 회사가 10년 동안 가만히 있는 게 아니거든요. 당시의 workflow보다 사업도 훨씬 더 확장되고, 고객들의 요구도 훨씬 많아지고 복잡해지잖아요. 그런데 10년 동안 백본은 그대로였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고도화 프로젝트를 하잖아요.

15:24 고종옥 맞습니다. 기본적으로 굉장히 무거운 ERP 시스템이 급격하게 성장하는 산업에는 잘 안 맞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보통 10년 주기로 차세대 ERP 프로젝트를 하는데, 아기의 몸을 가지고 손발만 성인의 손발을 쓰는 형국이거든요. 어떻게든 손발은 성인이 돼서 기존 업무를 처리하는데 몸통은 아기다 보니까 시스템적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몸통도 성장했어야 되는데, ERP는 항상 살아 있어야 되거든요. 회사가 돌아가는 한 공장은 단 하루도 멈출 수가 없고요. 그러다 보니까 살아 있는 상황에서 계속 발전시켜야 되는 어려움이 있는 거죠.

16:15 노정석 그렇죠. 지금 부문장님이 조심스럽게 말씀을 돌려서 하시느라고 많이 애쓰시는 게 느껴지는데, 제가 시스템을 봤을 때는 원본 시스템은 그대로 있고, 이 시스템은 재무제표를 뽑기 위한 최소한도의 시스템만 가지고 있고, 추가되는 프로젝트들은 별도의 게이트웨이를 하나 만들어서 부가 프로젝트로 굉장히 많이 붙어 있었잖아요.

16:51 고종옥 일단 프로젝트가 너무 많고요. 솔루션도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레거시를 바꾸면 이 솔루션도 다 따라와야 되는데, 업체가 너무 많다 보니까 이걸 한꺼번에 통합하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17:01 노정석 이런 부분에 대해 엔터프라이즈 일을 하시는 분들이나 기업의 오너분들에게 사실을 전달드리자면,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층이 소프트웨어나 IT의 전문가는 아니시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 당연한 것들을 거의 모르고 계시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여기에 프로젝트를 하러 오는 회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앞에 쌓여 있는 걸 좋은 말로 레거시라고 부르고, 현실적인 말로는 똥이라고 부르죠.

17:37 고종옥 기술 부채라고 합니다.

17:38 노정석 잔뜩 쌓여 있는 이 기술 부채를 전혀 안 건드린단 말이에요. 그러고 나서 이건 그대로 옆에 묻어 두고, 거기에 새로운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구축해서 자신들의 솔루션이라든지 새로 만든 것들이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형태로 시스템들이 발전하잖아요.

18:03 고종옥 그렇게 해야 3개월에서 6개월 만에 프로젝트를 끝낼 수 있으니까 그렇게 되는데, 결국에는 전체를 건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전체를 건드리는 의사결정을 하기도 쉽지 않고, 특정 임원이 이 커다란 걸 건드리기에는 굉장히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죠.

18:18 노정석 맞아요, 맞아요. 이게 작은 스타트업들이라고 하면 있던 레거시 시스템을 다 걷어내고 하면 되는데, 지금 돈이 몇천억, 몇조 원대로 이미 돌아가고 있는 시스템인데 그 시스템을 개선한다? 돌아가는 시스템에서 문제도 생기면 안 되고.

18:35 고종옥 그게 가장 크죠.

18:36 노정석 개선도 돼야 되고, 어느 시점이 되면 깔끔하게 넘어가야 되고. 이게 누가 해도 굉장히 어려운 문제예요. 그래서 제가 작년 가을에 이 ERP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는 얘기를 하고 밖에 ERP 쪽 고수분들을 찾아다니면서 조언을 구하니까, 한 세네 번은 실패해야 되는 게 원래 차세대 ERP 프로젝트라는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 정도로 어려운 얘기다.

19:12 근데 이게 현실이긴 하지만 이 사이에 좀 바뀐 게 있다면 AI가 들어와서 코딩이라든지 이런 부분을 소위 딸깍딸깍딸깍 해주는 것들이 굉장히 많아졌단 말이에요. 그리고 여기서 간극도 있는 부분인데, 오너분들은 “그거 AI 시키면 다 되는 거 아니야?” 물론 다 안 되죠.

AI 도입을 보는 경영진과 현장의 온도차 19:23

19:32 노정석 이 간극 사이에서 엔터프라이즈도 AI를 도입하면서 바뀌어야 하는 방향성들이 있는데, 저희가 오늘 이 대화의 주제가 나오기까지 상당히 오래 걸린 건데, 도대체 뭐가 옳은 단계냐? 그게 제가 AI 프론티어에서 고 부문장님이랑 엔터프라이즈 쪽 얘기를 앞으로 간간이 하게 될 텐데, 그걸 하기 위한 목적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솔직히 부문장님이나 저나 다 회사 내부의 굉장히 민감한 것들과 연결이 많이 되어 있으니까 말을 하면서도

20:14 고종옥 계속 자기 검열이

20:20 노정석 계속 머릿속에 돌고 있거든요. “이건 말하면 돼, 이건 말하면 안 돼.” 이런 것들이 돌고 있긴 한데, 최대한 그래도 팩트에 가깝게 개선 이야기를 좀 해보도록 하죠.

20:31 고종옥 일단 가장 AI로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게, 기본적으로 차세대 ERP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AS-IS 분석이라고 해서 기존 업무에 대한 모든 프로세스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다 정리되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빠르게 발전하는 회사일수록 그런 게 당연히 매뉴얼화돼 있지 않고요. 사수와 부사수의 관계로 전해져 오는 업무, 그리고 각각의 문제점을 똑똑한 직원은 또 알아서 Excel과 함께 해결하고, 누구는 해결 안 하고 대충 하고, 이런 것들이 산재되어 있는데 너무나도 당연하게 소프트웨어 관점에서는 이걸 정리하지 않고서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가 없거든요.

21:13 근데 항상 차세대 프로젝트는 이런 걸 정리 안 한 상태에서 출발합니다. 이거 다 그래요. 전 세계도 마찬가지지만, 그래서 IT 컨설팅이 붙습니다. IT 컨설팅이 붙어서 “내가 싹 정리해 줄게” 하면서 일단 시작이 되는 게 이런 프로젝트인데, 이게 자기 회사의 일이면 도메인 전문가가 컨설턴트가 도메인 전문가일 수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업권 특유의 업무 프로세스뿐만 아니라 그 회사에서 하는 굉장히 좋은 방식들이 있거든요. 이런 것들을 다 스스로 정리하는 게 되게 중요하죠. 근데 이걸 AI와 같이 정리하면 굉장히 효과적입니다.

22:04 노정석 근데 여기서 이게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고, 저희는 그거를 저희만의 방식으로 넘어오긴 했는데, 이게 방금 말씀하신 그 회사만이 갖고 있는 고유의 시스템. 이 시스템이라는 게 누가 써준 건 아니거든요. 그 회사가 진화를 하면서 시장에서 마켓 리더로 떠오르며 만들어 온 시스템이거든요. 그리고 이 시스템이 요새 AI 분야의 용어로 얘기하면 회사의 암묵지란 말이에요. 그 암묵지가 조직에 어떤 형태로든 쌓여 있고, 그게 굉장히 괴리되어 있죠. ERP는 제일 중요한 일종의 BOM이라든지 재무라든지 이런 데이터가 지나가는 파이프라인이고, 얘가 업무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부분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가장 똘똘한 직원의 PC에 존재하는 Excel과 혹은 문서나 파워포인트 위에 존재한단 말이에요. 그리고 이 시스템 위에 조직이 굴러가는 구조로 되어 있고, 이 조직은 그 Excel 위에서 굴러가고 Excel에서 정리된 걸 결론만 ERP로 넘겨서 처리하는 시스템으로. 적응이라는 표현이 맞겠네요. 적응이네요. 발전하는 조직이 발전하지 않는 시스템 위에서 그런 식으로 만들어져 왔던 거죠.

가장 똘똘한 직원의 Excel에 쌓인 회사의 암묵지 22:08

사내 Claude Code 교육과 GitHub에 커밋하는 현업 100명 23:28

23:28 노정석 처음 사내에서 AI 교육을 했었잖아요. AI 코딩 교육이죠, 엄밀하게 얘기하면. 작년 가을 정도가 딱 Claude Code가 떠오르기 시작하는 시점이었고, 작년 가을에 정확하게 사내에 있는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Claude Code, 당시엔 Codex는 좀 인기가 없을 때였습니다. Claude Code 교육을 실시했단 말이죠. 그러면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그런 거에 제일 관심을 갖는 분들은 가장 핵심 업무를 담당하던, 나름 앞서신 분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분들이 또 우르르 지원하신단 말이죠. 그리고 나서 그분들한테 저희가 교육을 했죠. 뛰어난 분 한 분이 오셔서 교육을 다 해주시고 또 그분의 열정으로 많은 교육생들도 감화를 받았는데, 그분들이 교육을 받고 만든 시스템이 뭐였죠? 당연하게도

24:27 고종옥 각 부서에 꼭 필요한 시스템을 스스로 만들어서 쓰기 시작했죠. 그래서 그동안은 어떤 업무 프로세스를 위한 제품이 필요하면 SI 프로젝트를 발주한다거나 솔루션을 사 오거나 이랬는데, 이제는 각 부서에서 다 아주 복잡한 시스템을 제외하고는 만들어 쓰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그래서 도메인 전문가라고 저희가 부르는 기존 업무를 하시던 분들 중에서 지금 개발자급으로 GitHub에 소스를 커밋하고 계시는 분들이 저희 산하에만 벌써 100명이 넘습니다. 이게 굉장히 놀라운 출발이었죠.

25:07 노정석 이렇게 문화를 바꾸는 것도 어떤 도메인과 기술의 중간에 있으면서 거의 사장급의 열정을 가진 한 명의 어떤, 저는 항상 그게 되게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entrepreneurship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오너십을 갖고 있는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누군가 한 명이 있으면 그 유전자가, 그 문화 유전자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조직에 복사가 되거든요.

25:37 제가 알고 있었던 건 30~40명이었는데 그게 벌써 100명이 됐군요.

25:40 고종옥 거의 100명 가까이 됐어요.

25:42 노정석 그러면 그 100명들이 엄밀하게 얘기하면 비엔지니어 출신들이 거의 대부분인

25:48 고종옥 개발을 올해 처음 해보신 분들, 작년에 처음 해보신 분들, 거의 이 정도 수준이죠.

25:58 노정석 예. 물론 거기서 생기는 문제점들도 당연히 있어서 그분들에 대한 재교육이라든지 아니면 또 엔지니어링 능력이 충만하신 분과 도메인 전문가들을 어떻게 섞을 거냐, 이런 문제들도 저희가 당연히 풀고 있긴 한데,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가 보면 자연스럽게 그분들이 회사의 핵심, 각 부서의 핵심 workflow를 AI로 자동화한단 말이죠. 그리고 나서 그걸 ERP로 던져주는 시스템을 만들어요. 맞죠? 그러다 보니까 그것 때문에 생기는 당연한 일은 저희가 기존에 존재하던 수많은 레거시 서브시스템들, 그 시스템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죠?

26:41 고종옥 다 없앨 순 없죠. 일단 굉장히 중요한, 저는 그런 말을 좋아하는데 회사는 생명체와 같거든요. 그래서 어떤 장기를 들어내면 그런 일을 할 무언가는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그게 사이보그 형태가 되든 아니면 유기적 형태가 되든, 스팀펑크가 되든 할 때 어떤 게 있어야 되는데, 그래서 기존에, 결국은 아직까지는 레거시가 확 바뀌진 않았고요.

27:15 레거시와 연동하던 중간에 Excel이 있었는데 이게 현업들이 직접 개발한 소프트웨어로 바뀌기 시작한 거죠. 그러니까 이게 굉장히 커다란 장점이, Excel은 당연히 파일들을 저장할 순 있지만 저장된 중간중간의 수많은 계산 데이터들이 ERP에 100% 남진 않거든요. 이게 굉장히 중요한 데이터일 수도 있는데, 그게 소프트웨어로 바뀌면서 업무 프로세스 과정이 다 사내 데이터로 남기 시작했다 라는 거예요.

27:43 그러니까 재밌는 일이 일어난 건데, DX를 완료한 다음에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AX를 가는 게 굉장히 이상적이긴 하지만, 현재 제조업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덜 DX가 된 부분들을 각각의 혁신가들이 AX를 하다 보니 필요한 것들이 다 DX까지 마무리되는 형태가 되고 있는 거죠.

DX를 지나 AX로 가는 제조업 27:47

28:06 노정석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인데, 예전에 digital transformation 하면 그 도메인에 있는 사람들은 그거를 시스템으로 구현해 낼 능력이 없으니 그걸 하는 사람에게 다 말을 하거나 아니면 외주를 주거나

28:21 고종옥 그래서 컨설턴트, IT 컨설턴트의 역할이 그거였죠.

28:25 중간에서 매개하는 겁니다.

28:25 노정석 그런데 그 IT 컨설턴트들이 해주던 일들을 내부에 있었던 도메인 전문가들이 그냥 가져와 버린 거네요.

28:32 고종옥 멋있게 도메인 전문가라고 표현했지만 그냥 기존 직원들이 그 일을 직접 하게 된 겁니다. 그거는 멋있어 보이기는, 와, GitHub에 개발도 하고, 이런 게 되게 멋있어 보이긴 하는데, 더 중요한 건 바로 그 포인트죠. 자기의 일들을 완전히 DX화할 수 있고 그거를 전부 ERP에 기록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자기가 업무가 조금씩 바뀔 때마다 자동으로 스스로 그걸 해 나간다는 게 결국 ERP가 적응을 넘어 진화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9:12 노정석 직원분들, 도메인 전문가분들이 하시는 업무에 어떤 일을 달성하기 위해서 수많은 context를 넣을 텐데, 그 context에 들어간 데이터가 이제는 그냥 원문으로만 있으면 저희가 얘한테 던질 때 정보가 꺼내지는 세상이니까 자연스럽게 회사 전체의 workflow에 대한 데이터의 포맷이라든지 아니면 그 업무의 정의, 무엇이 들어와서 무엇이 나가야 된다, 예외 상황은 뭐가 있다 라고 하는 그런 암묵지들이 자연스럽게 디지털 데이터의 형태로 전환이 됐다.

29:45 고종옥 각각의 구성원들이 자기 업무만 열심히 하고 있다 보면

29:50 이 부분들이 자동으로 문서화되고 더 나아가서 그래프로도 다 그려주고, 주기적으로, 아니 10년에 한 번 컨설팅을 통해서 나와야 되는 결과물들이 매 순간 나오고 있다는 게 놀라운 변화이긴 합니다.

30:07 노정석 그래서 저희가 결과적으로, 이것도 AI 때문에 가능한 일이긴 한데 회사의 전체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이렇게 두꺼운 백서가 나왔죠. 우리 회사는 이거 갖고 가면 큰일 나.

30:25 고종옥 요약본으로 만들었던 게 1,200페이지 정도 되고요. 실제론 거의 7,000페이지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30:36 노정석 물론 그 안에서도 핵심이 되는 것들은 당연히 있고, 그러한 것들이 회사에서 조직에서 다음 부서장, 부서장, 부서장으로 넘기면서 만들어진 게 회사인데, 자, 그래서 거기까지 만들었잖아요. 단위 업무 시스템들이 돌아가고 있었는데 얘들을 일단 정리해서 ERP로 들어가는 시스템들을 만들었는데, 다시 SAP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그럼 SAP가 지금의 이런 포지션을 갖추게 된 배경, 계기. 저도 이 엔터프라이즈 생태계를 이번에 살펴보면서 굉장히 강력한 회사다, 비즈니스 모델도 정말 좋고 자체 생태계가 돌아갈 수 있는 회사인데 여기도 AI 때문에 지금 머리가 정말 아프겠구나라는 생각은 저도 들긴 하거든요. 근데 엔터프라이즈 쪽에서, 재무 쪽에서 그런 필요가 굉장히 많은데, SAP에서 나온 데이터가 아니면 믿을 수 없다. 그건 브랜드에 대한 신뢰기도 하고, 그 시스템이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해주길래 SAP 데이터에서 나온 거는 믿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죠?

회계법인이 SAP 데이터만 믿는 이유 31:02

31:50 고종옥 일단 그게 회계법인이나 감사 관점인데 중간중간에 가드레일이 되게 잘 잡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자체적으로 ERP를 만들어서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하고 INSERT하면 누구든 SQL문으로 해당 데이터를 고칠 수 있다 보니, 이게 만들어진 데이터인지 어떤 데이터인지 신뢰하기가 어려울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SAP 같은 경우에는 예를 들어서 FI와 관리회계 CO, 그리고 매출, SD 모듈, 영업 모듈, 이런 흐름에서 생성된 데이터가 그래도 규칙에 의해서 쓰이고 규칙에 의해서만 수정될 수 있다는 부분이 회계적으로 볼 때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규칙이 세워져 있는 것 같아요. 결국 회계법인에서 SAP 데이터거나 더존도 마찬가지입니다. 더존의 데이터는 믿을 수 있고, 그 외에는 못 믿겠다고 하면 그게 믿을 수 있다고 증명해야 되다 보니까 현실적으로는 결국 유명 ERP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32:54 노정석 거의 한 40~50년을 업계에서 표준으로 동작하던 소프트웨어고, 그 브랜드력은 무시할 수가 없으니까. 소프트웨어적인 관점에서만 살펴보면 회계 장부라는 것 자체가 복식부기가 여기서 끝나고 저기서 끝나고 한 게 나중에 딱 맞아떨어져서 자체적으로 검증이 가능한 게 복식부기 시스템의 특징인데, SAP는 단위 모듈마다 그런 것들의 소위 checksum을 맞춰주는 것들이

33:26 고종옥 부문별로 많이 있습니다. 중간중간에 예를 들어서 월 마감을 한 이후에 갑자기 원가 수정을 하면 안 되잖아요. 근데 원가 수정을 해야 되는 상황이면 바로 원가 수정을 하는 게 아니라 역분개라는 특정한 과정을 통해서 기존에 됐던 걸 다 되돌리고, 우리가 흔히 데이터베이스 transaction 관점에서 누가 어떤 돈을 출금하기 위해서 여러 앱을 띄워놓고 동시에 출금이 안 되도록 transaction으로 묶어두듯이 업무 간에 transaction으로 묶여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이 있거든요. 이게 결국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까 회계 시장에서 강한 신뢰를 주는 건 사실입니다.

34:09 노정석 그러니까 거기에 소위 audit 시스템을 통과한 장부는 그냥 희한하게 끼워 맞춰서 한 게 아니라면 어딘가 중간의 검증 시스템에 걸려서 결과적으로는 오류가 있기 힘든. 그런 시스템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34:30 근데 SAP 시스템이 저도 YouTube에서 보고 매뉴얼들을 보면, FICO, 재무회계와 관리회계, 이 두 가지 모듈이 어떤 회사에 가장 중요한 1번 시스템이고, 근데 회사별로 어디는 제조업, 어디는 유통업, 어디는 또 다른 걸 한다. 수많은 업무 프로세스들이 있고. 이 장부 계산을 하기 위해서 그 모듈들에서 데이터들을 잘 던져줘야 되는 거란 말이에요.

35:00 고종옥 맞습니다.

35:01 노정석 그리고 소프트웨어 관점에서는 그거 그냥 PostgreSQL DB 만들어 놓고 다 만들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까 말씀드렸던 강북의 IT에서는 그걸 할 수 있는 엔지니어가 없기 때문에.

35:16 고종옥 없고, 너무 비쌉니다. 거의 특급 개발자 수준의 개발자가 항상 필요한 구조거든요.

35:25 노정석 그걸 다 모듈로 만들어서, “자, 당신은 이 산업입니까? 그럼 이 산업에 맞춰서 이 모듈, 이 모듈 사시고 이렇게 구성하시고 돌리면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듈로 해결이 안 되는 거는 소위 자체 개발 시스템, 이 ABAP이라고

35:44 고종옥 ABAP이라고 많이 한대요.

35:45 노정석 ABAP이라고 얘기하는 그 언어로 만든 시스템으로 이제 그 소위 커스터마이징을 해서 붙이는 그런 형태로 되어 있잖아요.

35:51 고종옥 기본적으로 ABAP으로, SAP 같은 경우에 ABAP 코드로 이렇게 짜야 되고, 그 ABAP 코드를 바탕으로 예전에는 온갖 업무 프로세스까지 다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결국 업무 프로세스를 고치기 위해서는 ABAP을 할 수 있는 개발자가 필요한데, 저도 컴퓨터공학과를 나오고 평생을 소프트웨어 쪽에 종사했지만 ABAP 코드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거든요. 그만큼 ABAP 코드를 쓰는 사람이 희귀합니다. 그리고 ABAPer들, 그러니까 ABAP 개발자들은 실제로 다른 언어를 해보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까 굉장히 독특한 위치를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36:44 노정석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직군이 아니라, 여기는 아예 SAP 생태계 안에서 엔지니어나 컨설턴트의 경력을 쌓으신 분들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질문이 있어요. FICO가 굉장히 강력한 시스템인 건 맞는데, 그 위에 돌아가는 단위 모듈들 있잖아요. 저희 코스맥스만 하더라도 영업과 마케팅, 그다음에 연구개발팀이 있고 굉장히 큰 부분은 생산이고요.

SAP 모듈 커스터마이징의 비용과 한계 36:56

37:14 고종옥 생산 쪽이 제일 크죠.

37:19 노정석 이 시스템들 가져다 쓰면 돌아가나요? 그 시스템들이 그 회사들에 존재하는 업무에 딱 맞을 순 없겠는데, 부가 개발이나 이런 걸 열심히 하면 돌아가게 만들 수는 있나요?

37:34 고종옥 ABAP으로요? 네, 만들 수 있죠. 근데 프로세스가 바뀔 때마다 유지 보수를 하면서 만들어야 되는 거죠.

37:39 노정석 프로젝트를 유지 보수하는 것들도 굉장히 느리고.

37:43 고종옥 오래 걸리고 비싸고요.

37:44 노정석 SAP가 그렇게 생태계를 만들어 온 거기도 하고.

37:48 고종옥 SAP가 그것까지 의도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개발자들의 성향도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38:01 그리고 보통 A라는 개발자가 일을 하는데, 갑자기 오늘 프런트엔드 개발자가 없으면 다른 사람이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 있잖아요. 일단 GitHub를 보고 하면 되는데, 희한하게도 제가 경험해 본 바로는 ABAP 쪽 같은 경우에는 누가 FI 담당자다, 그러면 해당 분이 안 계시면 일이 멈춰요. 그리고 CO 담당자다, 그러면 CO 쪽 개발자가 FI를 모르고 FI 쪽이 또 CO를 모르고 그럽니다. 그리고 CO 쪽 개발자는 생산 관련한 PP 쪽을 또 전혀 몰라요. 서로 간에도 경계가 많이 쳐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영역을 침범도 안 하고, 하려고도 안 하고요. 실제로 채용 공고를 낼 때도 ABAP을 할 수 있는 사람, FI 모듈 담당자, 이런 식으로 채용을 합니다.

38:51 노정석 생태계가 그런 식으로 당연하게 굴러가도록 진화해 온 거네요.

38:55 고종옥 그래서 딱 자기 업무만 해도 되는 구조로 되어 있고요.

39:00 노정석 그런데 지금 현재 개별 모듈에 박혀 있는 모듈들은 제 역할을 하긴 해요?

39:06 고종옥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 같은 경우에는 업무가 계속 추가되고 바뀌는데, 이 레거시는 못 따라오다 보니까 이 중간을 SI로 아교처럼 메우고 있기 때문에 원활하게 돌아가진 않지만 어떻게든 돌아는 간다, 이런 구조입니다.

39:31 노정석 그렇구나. 아까 SAP 생태계 얘기가 나와서, 왜냐하면 이걸 사업적으로도 공부할 만한 가치가 있고

39:37 고종옥 굉장히 재밌는 비즈니스 사례인 것 같습니다.

39:40 노정석 그래서 제가 한국에서도 SAP 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고 미국에서도 SAP 본사에 계신 분들을 이런저런 컨퍼런스에서 만나서 얘기를 해보면 생태계가 완전히 나뉘어 있다는 생각이 확실히 들어요. 그분들이 쓰는 용어들과 우리가 쓰는 용어도 기본 철학에서부터 많이 다르고, 그분들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이라기보다는 비즈니스 관련한, 굉장히 문과 쪽이더라고요. 그래서 이야기를 하면 저희는 20%의 문과 이야기와 80%의 공과 이야기를 하는데, 거기는 바뀌어 있어요. 80%의 문과 얘기와 20%의 공과 이야기를 하는 식으로 좀 달라져 있는데, 이 SAP 생태계의 독특한 점에 대해서도 한 번 얘기를 해보면 재밌겠다고 느꼈는데요.

SAP 컨설턴트 생태계와 엔지니어 품귀 40:32

40:38 노정석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강북의 IT와 판교의 IT. 근데 전통적으로 AI가 코딩을 하면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버리기 전까지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는 직업은 계속 품귀였어요. 실력 있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저희가 소위 얘기하는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이라든지 빅테크라든지, 혹은 네카라쿠배라든지, 한국으로 예를 들면 그런 쪽으로 가니까 전통적인 회사 입장에서, 저희 코스맥스 입장에서든 다른 대형 제조사 입장에서 보건, 당연히 이런 고급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프로덕트 매니저들을 데려와서 쓰면서 우리 일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면 만들었겠죠. 근데 그 사람들을 구할 수 없었던 게 제일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아예 구할 수가 없었어요.

41:33 그리고 그러한 공백을 메운 게 소위 대형 B2B 회사들이거든요. Salesforce라든지 SAP라든지 IBM이라든지 이런 회사들이 들어가서 그 간극을 다 메워 놨는데, 그다음에 이 회사들이 SAP이나 Salesforce가 자신들만의 거대한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만들고, 그 생태계 안에서 자신들만의 코드로만 작업하는 엔지니어군, ABAPer나 SAP consultant 같은 직군을 강하게 만들었단 말이에요. 여기 생태계가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42:09 고종옥 네, 네. 큽니다.

42:16 노정석 그리고 나서 이러한 업무는 이들만 할 수 있었고, 대부분 회사들이 SAP 시스템을 구축하고 나면 내부적으로 이런 시스템을 굴려야 되는 사람들을 채용하게 된단 말이에요. 근데 이분들도 다 SAP 생태계에 기존에 존재하던 컨설턴트나 다른 회사에서 SAP을 담당하던 사람들이 오고요. 그래서 이 커뮤니티 인력풀과 기업 내부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도 재밌었거든요. 왜 이렇게 돌아가죠?

42:56 고종옥 마치 공대생끼리 더 친하고, 대화도 그렇고요. 문과는 문과생끼리 친하고, 이런 것처럼 실제로 시장의 예를 보면 SAP 개발자들, ABAPer들은 ABAPer들끼리도 커뮤니티가 있고요. 그래서 오히려 전통적인 개발자와는 많은 대화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업무가 다르기도 하고요. 또 대화가 없으니까 친해질 기회도 많이 없는 것 같고요. 근데 서로 다른 회사의 ABAPer, SAP 담당자들끼리는 오히려 더 친한 경향도 보입니다. 이게 특정한 목적이 있다기보다 비슷한 업무를 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결국 그게 효과적으로 이직할 수 있는 자신의 경력 경로에도 영향을 많이 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43:42 노정석 SAP라는 회사가 이 생태계를 하루 이틀 만들어 온 게 아니라 몇십 년에 걸쳐서 만들어 왔거든요. 그래서 자기네들은 솔루션만 공급하는 위치를 차지하고, 그다음에 개별 기업들에는 절대 SAP가 직접 팔지 않아요.

44:01 언제나 제3자 컨설팅 회사를 끼고 팔아서, 이들의 이익률을 굉장히

44:08 보장해 주는

44:09 구조이고, 그다음에 이런 제3자 회사들은 풍부한 엔지니어와, 그러니까 ABAP, 또 SAP가 공인 자격증을 발급하잖아요. 그 자격증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을 고용하는 구조로 되어 있고, 그래서 SAP는 강하게 브랜드를 유지하고 생태계의 규칙을 설정한 거죠. 우리는 이건 되게 비싸게 받을 거고, 그다음에 이거는 어느 정도 해야 되고, 심지어 경쟁도 이렇게 해야 되고, 그 사람들은 우리가 교육시켜 주고.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까 매우 강력하고 대안이 없는, 강력한 해자로 둘러싸인 사업으로 40~50년을 굴려 왔는데,

AI로 흔들리는 SAP의 해자와 제조업 인재 유입 44:48

45:04 노정석 AI 시대가 오면서 이쪽이 바뀌는 건 저 때문이 아니라 AI 시대가 오면서 회사들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채용이 전면 다 동결된 건 더할 나위 없는 사실이거든요. 안 뽑아요. 있었던 사람들을 더 잘하게 하는 게 어디까지 되는지 보자는 정도로 되고 있고, 신규 취업이 막힌 건 말할 것도 없고, 과거로 보면 고급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도 이제는 시장에 공급되기 시작한단 말이에요. 그럼 거꾸로 강북에서 IT를 하던 분들도 이제 기존에는 채용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채용해 볼 수 있는 구조로 넘어와 버렸거든요.

45:36 고종옥 저희도 PI 혁신 부문 산하에 AX 혁신팀이 있는데, 이번에 10명 이상을 채용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그동안 소프트웨어 개발자 중 좋은 이력을 가지신 분들이 보통 제조업에 지원을 잘 안 하거든요. 보통 소프트웨어 회사에 더 지원하고 싶어 하고, 전에는 검색엔진 회사, 또 한동안은 투자 많이 받은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에 많이 가셨는데, 이력서를 저희도 100장 가까이 검토하면서 이력이 정말 많이 좋아졌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그동안은 제조업에서 저희가 가질 수 없는 인재들이 지금 많이 지원하고 있어서, 결국 제조업의 소프트웨어 역량이 AI 때문에 오히려 다른 맥락에서 강화되겠구나, 이런 생각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46:29 노정석 그러면 저희가 엔터프라이즈 IT 얘기를 조금 해오면서, 저희가 굉장히 많은 일을 했잖아요. 예전에는 만들 수 없었던 시스템들이 만들어져서 돌아가고, 또 그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지식이 부족하신 vibe coder가 얼마나 큰 사고도 치는지, 우리 경험으로는 DB 날려 먹는 거.

46:58 고종옥 그런 거 종종 있죠.

46:59 노정석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 전체적으로는 예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저희도 그걸 어떻게 잘 방어할 거냐는 시스템을 짜지, 사람들이 더 많은 일을 해보고 싶은 일들을 하게 하는 시스템들은 계속 도입을 하고 있단 말이에요. 저희가 SAP 생태계 얘기를 좀 하긴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도 다음 버전의 SAP으로 넘어갈 거긴 해요.

47:34 고종옥 결국 저희도 법인이 굉장히 많고, 작은 법인도 있는데, 매출액 기준으로 얼마 이상 되면 SAP을 쓰고 얼마 이하면 더존을 쓰고, 또 어떤 경우에는 다른 ERP를 써요. 저희 회사 내에만 서로 다른 ERP가 세 개나 있거든요.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여러 ERP를 다 계속 쓰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근데 가장 중요한 건 회사가 앞으로도 계속 급격하게 성장한다는 가정하에, 그러면 업무 프로세스와 공장 생산, 영업 이런 부분까지 과연 그 무거운 ERP가 앞으로도 지속해서 커버할 수 있을지는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48:16 노정석 그 부분으로 이야기를 조금 더 진전시켜 보면, AI가 들어와서 굴러가는 조직의 모양은 어떠한 모양이 가장 이상적인가라고 하는 근원적인 질문들을 저희가 매번 하고 있고, 거기에 대해서 다양한 실험들을 해보고 있어요. 그 실험들의 가장 기본이 되는 건 결국 domain을 잘 아는, 그러니까 domain 전문가라고 얘기하고 기존에 우리 회사의 우수 직원이었던, 그분들이 AI와 결합해서 확 늘어나는 생산성이 출발점이란 말이에요.

48:56 그 출발점에서 저희가 아까 Excel 얘기도 했고, 이런 거 했단 말이에요. 그리고 그분들이 만들어진 workflow를 가지고, 그렇게 해서 시스템들이 AI로 바뀌어 가다 보면 원래 존재하던 팀을 인간 팀이라고 부릅시다. 기존에 존재하던 workflow, 이걸 아까 처음에 든 비유로 보면 증기기관으로 만들어진 시스템과 전기모터를 달고 있는 시스템, 이 두 개의 시스템이 공존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혹은 보완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그것들이 충돌하거나 혹은 어느 게 더 옳거나 그르거나 하는 것 때문에 선택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조금 위에서 보면 최고경영진 입장에서는 두 개의 시스템을 바라보게 되는 경우도 생기고, 이런 경우들이 생기는데.

49:45 고종옥 비일비재합니다.

49:46 노정석 케이스만 해서 재밌는 이야기만 해주시면 어떨까 싶어요.

솔루션 70억 미집행과 유지보수비 70% 절감 49:50

49:50 고종옥 경영진의 가장 중요한 관점은 그래서 AI 도입이 돼서 뭐가 어떻게 편해졌어? 이거 다 정성적인 거잖아요. 그러니까 어렵습니다. 그런데 정량적으로 저희가 지금 한 78개월 열심히 뛰어봤는데, 앞으로 도입해야 되는 솔루션들을 계산해 보니 한 70억 원어치를 안 사도 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신규 투자를 해야 되는, 투자로 잡히는 소프트웨어 투자비, 그러니까 개발 투자비가 대략 향후 23년 동안 벌써 70억 원이 절약되고요. 매년 나가야 되는 유지 보수 비용이 한 20억 원 있는데, 이것도 거의 70% 이상 절감을 내년부터 당장 하게 되고요. 올해만 해도 당장 유지 보수 비용 10억 원을 줄였거든요. 그러니까 일단 재무적 성과가 바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50:50 노정석 말을 하면서도 회사 입장에서는 좋은 일인데, 그렇게 해서 돌던 돈들이 효율이 증가하면서 계속 줄어드는 거니까 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확실히 AI는 디플레이션을 일으키는 힘이네요.

51:06 고종옥 그런 면은 분명히 있는데, 이렇게 봐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커다란 기업이 많은 솔루션을 사주면서 낙수효과로 소프트웨어 회사가 성장했다면, 지금은 소프트웨어 인력이 오히려 이런 큰 회사에 직접 합류를 하고, 낙수효과로 나갈 돈이 덜 나가서 결국 각각의 회사들의 핵심 경쟁력이 강화되는 효과가 나타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국가 차원에서는 오히려 이게 글로벌하게 더 강한 경쟁력을 가질 수도 있거든요. 저희야 K-뷰티에 집중하는 회사다 보니까 결국 이런 AI를 통한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K-뷰티의 경쟁력 제고로 직접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가고 있습니다.

51:56 노정석 예쁘게 표현해 주신 거네요. 근원적으로 AI는 그걸 먼저 잘 이용하는 사람이

52:01 고종옥 가져가게 돼 있죠.

52:02 노정석 결국 어떤 식으로든 작게는 효율 증가, 조금 더 가서는 본질을 건드릴 줄 아는 사람이 생기면 본질적인 생산성 증가가 일어나는 거고, 그게 주변으로 나가던 돈들이 줄어들어서 전체 경제 입장에서는 돈의 양은 줄어들지만 회사가 더 강해짐으로써 생기는 것들이 있다. 물론 거기에 가면 집중과 분배, 이런 얘기들이 또 나올 수 있긴 합니다마는. 그러면 저희가 하던 외주로 처리하던 부분들이 내부적으로 다 처리하게 됐다는 부분 말고, 기존에 있었던 workflow가 AI가 들어와서 근원적으로 확 바뀌거나 훨씬 좋아진 부분들이 있을까요?

SSOT가 ERP 바깥 Excel에 있는 이유 52:53

52:53 고종옥 실제로 SAP이나 더존이나 이런 ERP가 항상 회사 내에 SSOT라고 해서 단일한 진실의 원천이 되어야 되거든요. 지금 재고가 몇 개 있어? 어떤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뭐가 필요해? 이런 게 당연히 ERP에 있어야 되거든요. 근데 많은 경우 ERP 바깥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53:16 노정석 왜 그렇죠?

53:18 고종옥 저도 처음에는 이해가 안 돼서, 그러면 ERP가 왜 있어야 돼? 그랬는데, 그렇습니다. 일단 회사가 계속 급격하게 발전하다 보니까 기본적으로 하나의 single source of truth, SSOT를 만들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많은 테이블을 join하고 결합해서 정보를 생산해야 해요.

53:35 자재 마스터만 하더라도 저희가 몇십만 건, 몇백만 건이 되고 이거와 다 서로 연결되고, 그래서 여기에는 얼마가 들어가고 뭐가 들어가고, 이런 게 실시간 계산이 어렵습니다.

53:46 노정석 안 되죠. 그러면 그것도 역시 단위 부서들의 Excel 속에 있어요?

53:57 고종옥 그러니까 오늘 입고된 자재가 있을 거 아닙니까? 그리고 오늘 생산된 정보가 각각의 테이블에는 지금 SoT로 존재해요. 그런데 이것의 마스터에는 아직 반영이 안 되고 주기적으로 늦게 반영되는 경우가 있어요. 이게 하나의 예시인데요.

54:11 노정석 왜 늦게 반영해요? 일이 바빠서 그런 거죠?

54:20 고종옥 그것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일단 사람이 반드시 그걸 자동화해서, 예를 들어 생산 실적 입력이라든가 이런 경우도 있고요. 이걸 매번 돌리려면 ERP의 부하가 너무 심각하게 발생해서 그렇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자료가 너무 방대해서,

54:33 노정석 넣으면 그냥

54:36 처리하는 데 몇 분씩 잡고 있고, 한 시간씩 잡고 있고 이런 경우의 데이터들도 있는 거예요?

54:41 고종옥 한 시간이 아니고 7~8시간씩 돌아가죠.

54:45 노정석 그건 저희 관점에서는 프로그램을 잘못 짠 건데,

54:48 고종옥 그런 면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기본적으로 이런 것 같아요. 모든 ERP가 모든 업종에 맞도록 설계된 게 아니라, 결국 각각의 ERP가 해당 업종에 맞도록 설계되어야 되거든요. 근데 코스맥스 같은 경우에는 최종 생산품이 수만 가지예요. 이런 ERP는 없거든요. 왜냐하면 ERP의 규모가, 예를 들어 대형 자동차 회사를 보면 훨씬 큽니다. T코드라고 해서 프로그램도 저희보다 훨씬 많고요. 하지만 그 회사 ERP의 최종 완성품은 몇 개냐, 십몇 종이거든요. 단종되고 그러는데, 부품은 더 많아요. 근데 코스맥스 관점에서는 최종 생산품의 종류가 그렇게 많아요. 그러니까 이게 우리에 맞게 설계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큰 거죠. 이런 것도 개선할 만한 여지가 굉장히 많이 있고.

55:50 노정석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그걸 ABAP으로 쿵짝쿵짝해서 만들기에는

55:54 고종옥 사실 만들 수가 없죠.

55:56 이거는 기본적으로 SAP 아키텍처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입니다.

56:05 노정석 그러니 앓느니 죽는다고. 사람들은 훨씬 더 편한 자기들만의 데이터베이스, 그게 소프트웨어나 IT를 못 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Excel이 될 거고.

56:16 고종옥 근데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입고됐는지를 전화로 확인하든 어디서 확인하든, 그래서 물량 몇 개가 더 입고됐네, 그러면 지금 바로 생산 들어갈 수 있겠네, 그러니까 고객에게 이거 오늘 생산해서 내일모레나 글피에 납품할 수 있겠네, 이런 커뮤니케이션을 지금 이 순간에도 매번 해야 되거든요. 그만큼 실시간성이 중요한 산업이죠. 그러니까 예를 들어 전자제품이나 자동차처럼 제품 수가 그래도 한정돼 있는, 100종 이하의 그런 경우에는 재고도 100종이기 때문에 재고 감당이 되는 거예요. 이번 달에 1,000개 나갈 것 같으면 1,500개 준비해도, 이걸 위한 수많은 재고 물량이 그렇게 많이 준비되지 않아도 되는 거거든요. 근데 저희는 최종 생산품이 만 종, 10만 종이라고 하면 이걸 다 준비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대부분의 경우 Just-in-Time 형태로 처리가 되고, Just-in-Time 형태로 처리가 되다 보니까 결국 더 실시간성이 중요한데, 대부분의 무거운 ERP는 실시간성을 반영하기 어려울 수 있는 거죠. 이런 구조도 있고요. 이건 하나의 예시입니다.

57:30 노정석 그렇다 보니까 결국 처리해야 되는 일들은 현업 부서의 Excel에서 그 사람들끼리 소통하거나 전화를 하거나 메신저를 하거나 해서 그분들끼리 서로의 DB를 맞추고, 정리가 끝난 것들을 후행으로 ERP에 맞춰서 결과를 남기는 식으로 시스템이 구성돼 있겠네요.

57:53 고종옥 그렇습니다. 그래야 결국 납품이 되고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서 또 매출 인식을 하고, 회사가 돈을 받는 프로세스가 동작하게 되니까요.

AI가 없애는 부서 간 커뮤니케이션 비용 58:03

58:05 노정석 그럼 너무나도 당연하게, Excel로 돌아가던 시스템들에 AI가 들어가서 어떤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죠?

58:15 고종옥 굉장히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 있고, 기본적으로 특정 부서의 한 분이 하루에 처리해야 할 일이 Teams 문자 메시지로 오면 그게 하루에 300건씩 옵니다. 그럼 그걸 다 챙겨야 돼요. 근데 이런 것들이 없어지거나,

58:32 노정석 통째로 다 없어졌어요?

58:34 고종옥 통째로 없어진 일들도 있습니다. 어떤 부서라고 제가 말씀을 안 드렸는데, 서로 다른 부서에서 이런 일들을 다 없애고 있거든요.

58:48 노정석 이게 전부 소통하는 비용이고, 하루 종일 전화만 들고 일을 했는데, 아까 SSOT라고 말씀하셨잖아요. 모두가 동시에 보는 하나의 동기화된 데이터베이스가 있으면 해결되고, 이걸 보면 다 끝나는 문제가 되면 되는데, 그게 안 되는 일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단 얘기네요.

59:04 고종옥 이게 소프트웨어만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거든요. 근데 제가 업계 상황을 넓게 확인해 보니까 대부분 안 돼요. 원래 Excel과 함께 일하는 게 ERP더라고요. 그래서 굉장히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59:27 노정석 사람들이 대부분 다 합리적이거든요. 그리고 어딘가에 기회가 있으면 공급은 항상 생겨요. 이 엔터프라이즈 B2B도 AI 때문에 기존에 있었던 생태계에 어마어마한 대격변이 있을 수밖에 없겠네요.

오픈소스 ERPNext와 한국 세법이라는 빈틈 59:43

59:49 고종옥 그러고 있습니다. 방송을 보시는 분들께 힌트를 드리면, 오픈 소스 중에 ERPNext라고 있습니다. 이게 FI·CO 분야의 오픈 소스 프로젝트인데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거든요. 오픈 소스인데 AI를 지금 다들 도구로 가지고 있잖아요. 굉장히 빠르게 발전합니다. 그래서 이걸로 저희가 테스트를 해봤어요. 그동안 저희가 AS-IS 분석을 하는 수많은 업무 프로세스의 가드레일을 여기서 얼마나 신뢰성 있게 잡아주냐고 했는데, 완벽하진 않아도 한 70~80%의 가드레일이 다 동작하더라고요. 그래서 깜짝 놀랐거든요.

60:30 결국 ERPNext라는 소프트웨어를 한국에서 못 쓰는 단 두 가지 이유는 한국 세법에 맞게 적용되지 않은 것, 또 한국의 펌뱅킹이라고 해서 보통 ERP에서 뱅킹을 연결해서 입금까지 자동으로 해줘야 되거든요. 이 두 가지가 한국에 아직 도입되지 않아서 그런 거지, 분명히 어떤 스타트업이 딱 냄새 맡고 ERPNext를 활용해서 한국 세법 반영하고 펌뱅킹 붙이면 굉장히 가벼운 ERP부터 빠르게 SaaS 기반으로 동작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61:09 그런데 지금은 아시다시피 소프트웨어의 발전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강력한 SAP와 더존의 경쟁자 프로젝트로 성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61:24 노정석 그럴 수 있겠네요. 어떻게 보면 ERP가 기존에 ‘우리가 다 해줄게요’ 라고 했었던 업무 범위가 있었고, 어느 누구도 안 하기 때문에 단순한 뼈대 역할을 하는 걸 넘어서 비즈니스 프로세스 애플리케이션까지 얼기설기 구현해 주던 게 기존의 ERP 프로젝트였다면, 그리고 실제 업무는 단위 팀의 Excel에서 돌고 있는 게 거의 대부분 회사들의 현실이라면, 위에서부터 AI로 무장한 도메인 전문가들이 쭉 내려오고, 점점 기존의 ERP들은 핵심 영역으로 도망을 가거나 혹은 여기서 결정적인 무기를 갖추지 않으면 새로운 균형점이 기존의 ERP 입장에서는 매우 후퇴된 선에서 형성되겠다는 생각은 당연하게 드네요.

62:17 참 AI가 여러 사람 힘들게 만들어요.

62:20 고종옥 확실히 변화의 계절인 것 같긴 합니다. 모든 분야가 굉장히 빠르게 발전하고 바뀌고 있어서 흐름을 잘 타는 건 중요할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62:37 노정석 엔터프라이즈 AX는 굉장히 큰 시장이기도 하고, 요새 시장에 작은 FDE 업체들이 많이 탄생하고 있는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기반의 FDE들이 들어가서 바로 할 수 있는 업무들은 아니긴 해요.

62:49 고종옥 이렇게 숨어 있는 분야입니다.

62:51 노정석 왜냐하면 domain knowledge라고 얘기하는 암묵지들이 굉장히 많고, 엔터프라이즈에서만 통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근데 도메인 전문가들도 AI를 익히고, 기존에 있었던 고급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도 이 domain knowledge를 공격하러 올 거기 때문에, 마치 실리콘밸리의 앞서가는 AI researcher들이 지금 밤마다 분자생물학 책을 보면서 트윗을 올리듯이, 시장이 있는 곳이면 여긴 당연히 생겨날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63:25 고종옥 확실히 스타트업 업계에서 참신하고 뛰어난 시도들을 많이 했는데 ERP 쪽으로 시도를 못 한 이유는 분명한 것 같아요. 당장 스타트업에서는 ERP를 안 쓰거든요. 쓰는 게 Notion, 그리고 Google Storage 같은 거니까 이걸로 끝난 거예요.

63:47 회계처리는 회계 법인에 월 몇십만 원 정도 주면 다 끝나니까요. 그리고 특별한 경우에 한국에서는 더존 같은 소프트웨어를 쓰면서 장부 기록만 회계 담당자가 하면 되니까 IT를 하시는 분들이 이쪽을 접해 볼 기회가 아예 없었던 것 같아요.

64:08 안 해본 거니까 그런 시장의 수요도 찾을 수가 없는 거거든요. 근데 정말 숨겨진 커다란 IT 시장이 보호받으면서 있었다. 이게 또 AI가 있기 때문에 굉장히 도전을 받을 것 같기도 하다.

오너의 이해와 AI 시대에 인간에게 남는 것 64:25

64:25 노정석 그리고 거꾸로 저도 직업이 이렇고 이런 걸 하다 보니까 많은 기업의 오너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오너분들의 생각도 지금 막 다 열리고 있는 것 같긴 해요. 예전 같았으면 ‘그건 난 모르겠고 그냥 업체에 줘야 돼’ 라고 하는데, 사실 오너가 이게 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다음에 이걸 전환하는 과정에 어떤 인재가 필요하고 내가 감당해야 될 리스크는 뭔지를 명확히 알고 있어야 이 프로젝트가 출발할 수도 있고 성립이 가능하거든요.

65:06 많은 분들이 잘 모르고 하다 보니까 조금 하다가 기존의 구성원들이 강하게 반발을 하거나 아니면 본인이 생각할 때 결과가 잘 안 나오는 것 같으면 그냥 관둬버리거든요. 관둬버리고 다시 예전 거, 혹은 새 업체를 찾는 식의 관행이었는데, 저는 코스맥스 최고경영진한테도 감사드리는 부분이 노 대표가 생각하는 방향에 대해서 강한 믿음을 주시고, 부문장님이 하시는 방향에 대해서 믿음을 주시고, 그 방향으로 밀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AI와는 전혀 다르게 중요한 부분이다.

65:45 그리고 AI 시대가 되면 될수록 저희 그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도대체 인간한테 남는 게 뭐냐, 이런 부분들이거든요. 안목, 취향과 어떤 의지의 발현이라든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라든지, ‘나는 이 사람과 함께하고, 아니면 죽겠어.’ 그런 것들이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지, 약은 마음을 가지고 AI로 딸깍딸깍한다, 그래 가지고 큰일이 일어나진 않거든요. 그런 것들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

AI가 재편하는 기업 조직의 미래 66:16

66:21 노정석 자, 그러면 엔터프라이즈 AI 트랜스포메이션. 부문장님, 사실 저희 회사가 완전 공장 제조업이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빠르게 앞선 실험들을 하고 많은 부분들이 바뀌었단 말이에요. 그리고 그걸 최전선에서 이끌고 계시는데, AI 트랜스포메이션, 그러면 회사의 미래는 어떤 모양이 될 것 같아요? 지금 현재의 모습은 개별 부서가 있고 부서장님이 책임지고, 여기는 실무하고 실무자들끼리는 열심히 전화하고 이메일 쓰고 돈 벌고, 돈 벌면 월급, 보너스 나눠 갖고, 이런 시스템들이 계속 굴러가고 있는데 이 업의 본질은 단기간에 변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런데 그 시장에 그 업을 제공하는 조직은 AI 때문에 굉장히 많이 바뀔 거란 말이죠. 어떤 모양이 될 것 같아요? 이건 좀 냉혹한 현실이자 어쩌면 상상일 수도 있는데.

67:23 고종옥 사실 모든 분야의 모습을 다 상상하기는 어렵고, 일단 저희 영업 관점에서 한번 생각을 해보면 코스맥스에서도 영업팀이 굉장히 큽니다. 영업팀이 굉장히 큰데, 국내 마케팅의 영업 담당자들이 하시는 일들이 정말 너무나도 많아요. 고객 대응해야지, 고객 요청 사항이 있으면 그걸 체크해야지. 근데 체크를 하는데 실제로 연결해 주는 역할도 합니다. 이게 품질 문제면 품질 부서하고 얘기하고, 생산 문제면 생산하고 얘기하고, 또 생산은 특정 자재 때문에 안 된다, 그러면 해당 자재 담당자에게 연락을 하고요. 그리고 그게 원재료는 다 있는데 캡에 문제가 있으면 해당 부자재팀에 또 연락하고, 그 회사가 또 외부 회사거든요. 그쪽에 연락해서 일정 조정을 하고 입고 일정을 잡고, 심지어 안에 있는 로션의 느낌이 처음과 다르게 보들보들하지 않다 이러면 또 연구소랑 소통해야 됩니다. 일이 너무나도 많거든요.

68:35 노정석 그러니까 결국 국내 마케팅은 모든 백엔드를

68:40 한 명이 다 연결하고 있는 거네요.

68:43 고종옥 물론 시스템적으로도 되는데, 이게 급하면 시스템이 아직 업데이트가 안 됐을 때 다 전화로 해결하고. 굉장히 어렵습니다. 매출이 급격하게 성장하고 고객사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환경을 제한된 인력 증가로 감당하다 보니까 복잡도가 계속 늘어나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업무적인 부분들은 결국 장기적으로 다 AI로 최대한 대체가 될 것 같습니다.

69:07 그러면 국내 마케팅 담당자들은 오히려 고객과의 접촉에 더 집중하고 새로운 고객을 더 발굴하고, 그런 건 AI가 할 수가 없거든요. AI가 콜드 메일을 보내는 게 아니라 결국 고객과, 고객의 요구를, 사실 코스맥스도 고객의 고민들을 어떻게 해결해 줄까가 가장 최우선적인 목적이거든요. 그래서 고객이 어떤 신제품을 내고 싶은데, 이거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해주고, 이런 거에 더 시간을 써서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일을 더 주로 하고, 이런 수많은, 당연히 돼야 될 일들은 데이터와 프로세스만 정의되면 다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거든요. 이런 부분들은 결국 다 자동화돼서 각각의 인력들이 좀 더 고객 지향적으로 바뀌게 되지 않을까. 그게 제가 바라보는 국내 마케팅의 미래 모습 중 하나이고요. 각각의 부서가 다 다른 모습으로 발전할 것 같긴 합니다.

70:14 노정석 그런 것들이 하나씩 모듈을 뽑아서 이건 이렇게 바뀌고, 저건 저렇게 바뀐다. 이런 사례들을 한 사례씩 다음 시간에 보도록 하고, 좀 돌려서 말씀해 주시긴 했는데 여기에도 똑같은 얘기가 나오거든요. 이젠 사람이 소위 우리가 노가다 라고 얘기하던 업무는 최대한 빨리 AI한테 던져야 된다.

70:39 고종옥 반복적이고 시간 많이 드는 비핵심 업무. 근데 그런 게 핵심 업무일 수도 있어요. 근데 그런 거는 다 자동화되겠죠.

70:53 노정석 사람이 해야 되는 더 상위의 업무는 고객을 돌보는 것과, 그다음에 저도 저희 구성원한테 똑같은 얘기를 하는 건데, ‘잡일 없애줄 테니까 통찰을 가져와’라는 얘기. 통찰을 도출하는 부가가치 업무로 더 이동해야 된다는 너무너무 단순하지만 명확한 결론이 있네요.

71:16 그 변화의 속도는 얼마나 걸릴까요? 지금 저희가 사실 코스맥스 SAP을 위주로 해서 AI 트랜스포메이션을 맡은 지가 조금 있으면 거의 1년이 되어가는 것 같고, 부문장님 오신 지도 거의 한 8~9개월 된단 말이에요. 근데 그 짧은 기간에도 우리 변화가 굉장히 많이 있었어요. 그리고 변화의 속도는 우리 때문이 아니라 AI의 성능 증가 때문에 가속화되고 있단 말이에요.

71:41 고종옥 맞습니다.

71:42 노정석 우리가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 걔가 하는 일이 계속 좋아지고 있어요.

71:46 고종옥 맞아요. 가격도 싸지고요.

71:50 노정석 그러니까 이걸 잘 이해해야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저희가 바뀌는 속도도 계속 가속화되고 있단 말이에요. 언제 정도면 끝날 것 같아요? AI 때문에 조직이 다 바뀌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요?

72:02 고종옥 굉장히 보수적으로 봐도 2년 안에는 완전히 바뀔 것 같습니다.

72:10 그리고 특정 부분은 앞으로 6개월, 6개월 단위로 하나의 커다란 부분이 확확 바뀌는 모습이 될 것 같아요. 결국 AI로 변화되는 조직의 모습은 사람이 한순간에 로봇이 되는 게 아니라, 사이버펑크처럼 먼저 손이 강화되고 눈이 강화되고 그다음에 다리가 강화되고 이러는 것처럼 영업이 갑자기 확 바뀌고 공장이 확 바뀌고 연구소가 바뀌고 이러다가 결국 다 바뀌는 모습이 될 것 같습니다.

자기 업무를 먼저 없애는 AX 인재 72:36

72:36 노정석 자, 그러면 여기서 교훈적인 얘기로 한번 마무리를 하면, AI 트랜스포메이션을 회사에 있는 다른 부서가 와서 나에게 해버리면 암울한 미래일 것 같고, 그들이 우리 조직을 AX해버리면 사실 내가 업무로 갖고 있었던 많은 부분들이 날아가버릴 가능성이 있는 거네요.

73:02 고종옥 자신의 업무를 루틴한 업무를 잘 알고 잘 처리할 수 있는 것에 한정한다면 자기 자리는 매우 위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73:18 오히려 해당 업무 때문에 가지고 있는 domain knowledge를 바탕으로 계속 어떻게 더 개선할까, 그리고 혼자 할 수 있는 일보다 더 많은 일을 여러 명이 하되 비슷한 노동 시간으로 할 수 있을까라고 발전을 시켜야지, AI 때문에 8시간 걸린 일이 5시간이 됐으니 3시간은 놀아야지 하는 분들은 다른 분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굉장히 크겠죠.

73:43 노정석 저희 회사에서도 그런 일은 일어났으니까요. 사실 코스맥스에서도 지금 현업 부서에 있다가 AX를 하시는 분들도 자신들의 업무를 제일 먼저 없애버리고 더 하겠다 라고 하신 분들이 맞아요.

73:56 고종옥 앞선 이야기긴 한데, 지금 기존의 솔루션이나 SI 회사들이 급격하게 많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는데, 그 이유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그동안은 굉장히 많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투입해서 SI하고 솔루션을 개발하는 일들을 지금은 AI를 통해서 굉장히 효율적으로 하고 있다는 건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만큼 더 싼 가격으로 공급했으면 다 썼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AI 혁신으로 얻은 효율 향상을 그 회사의 이익률 증가로 다 가져가려고 하다 보니 내부에서 만드는 것과 차이가 너무 크게 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74:37 만약에 우리가 그동안은 SI 단가로 1,500만 원 받았는데, 이제 이 일을 예전에 6개월 하던 걸 한 달 안에 하니까 6분의 1만 받겠습니다, 이러면 아마 다 그대로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격은 안 줄어요. 그들이 훨씬 쉽게 만들고 있는 걸 아니까, 내부에서 만들면 예전만큼 오래 걸리는 일이 아닌 걸 아니까 더 내재화돼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75:04 노정석 그리고 그 일을 맡겨주시는 업체들도 “이거 어차피 AI 시킬 건데 더 깎아주세요”라고 말한대요.

75:08 고종옥 요새 그래야 되는 게 맞죠.

75:11 노정석 그리고 요새는 납품 조건에 소스 코드 일체를 넣는 경우도 많고, 소스 코드를 가져와서 하면 내부에서 딸깍거려도 된다는 것도 아시는 거고요. 세상이라는 게 어쨌건 새로운 도구가 나와서 뭔가 생기면 새로운 최적점을 만드니까.

75:29 빨리 적응해야 될 것 같네요.

75:30 그래서 저희가 AX라는 큰 얘기를 했고 회사 차원의 얘기를 했지만, 지식 노동자 입장에서 교훈을 만들어보면, 내가 내 일을 빨리 AI로 disrupt해버리고, 이 일은 난 안 해야 되는 거구나. 그럼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하지? 라는 대단히 인간적인 질문을 누가 더 빨리, 누가 더 열심히, 누가 더 잘할 수 있느냐로 귀결되네요.

76:00 고종옥 맞습니다. 예전에 하던 일의 두 배를 하면서 비슷한 노동 시간을 들여서 인당 성과를 늘려야겠다는 것도 굉장히 소극적인 발전 모습이고요. 그리고 방금 말씀 주신 것처럼 스스로의 일을 disrupt하게 되면 결국 다른 일도 disrupt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거든요. 그럼 그게 자기 역할이 될 겁니다.

76:20 노정석 그리고 그런 렌즈를 끼고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사실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져요. 그러다 보면 조직 안에서 톱니바퀴로서의 내가 아니라 정말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나로 정의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들은 앞으로 꾸준히 나오게 될 것 같고, 누가 더 빨리 깨닫느냐의 게임이라는 얘기로 한번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저희는 오늘 제가 한번 새로 시도해 본 건데, 제가 코스맥스에서 고 부문장님과 리더십의 지원을 받아서 하고 있는 일들에서 저 스스로도 배우는 게 굉장히 많아서, 조금 더 균형 감각이 생기면 다음번에는 어떤 단위 업무들로 들어가서 거기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하는 게 좋은 건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왜냐하면 이거는 저희가 얘기하지 않더라도 세상에 곧 다 알려질 일종의 모범 사례라서요. 한국의 엔터프라이즈 AX도 훨씬 빨리 좋아져야 된다는 의식하에 저희가 먼저 해봤던 시행착오들을 조금씩 공유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 그러면 오늘 10월 3일 녹화는 이걸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